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어제 몸이 안 좋아서 토를 두 번 하고... 잠들지 못하다가 아침 여섯 시에 잠들어서 일곱 시에 깨고 출근했더니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좋네요.
미국 날씨도 지금 많이 추워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휴가 가기 전에는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부모님과 아이한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오고 나니 뭔가 의욕이 팍 사라지면서 유산소만 하고 웨이트를 한 번도 안했네요.
몸의 긴장이 풀리니까 아픈 게 밀려온 건지 아니면 운동을 좀 멈췄더니 약해진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 오늘도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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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아이의 퇴행
새해의 활기찬 기운은 나와는 상관없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홀로 생활하며 출퇴근을 반복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퇴근하고 처갓집 단지 내 놀이터에 가곤 했다. 보통은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던 지라, 혹시라도 아이가 놀이터에 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1월은 놀이터에서 놀기에는 너무 추웠고 해도 빨리 졌다. 그럴 때면 벤치에 가만히 앉아 아이와 이곳에서 놀았던 때를 잠시 그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처갓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 길었다.
실제로는 10분도 안되는, 사거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곳이었지만
걸음을 걸을수록 아이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천천히 걸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 저녁에 전화를 하셨다.
오늘 일 잘 했니, 저녁은 먹었니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유였지만 아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그 마음을 나도 부모로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던 날엔 더 씩씩하게 대답했다.
1월 둘째 주 어느 날,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주말은 아니지만 아이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애한테 셋이 같이 살고 싶다고 했어?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애가 요즘 퇴행하는 모습이 보여. 왜그러냐고 물어보면 엄마아빠랑 셋이 살고 싶다 이러고. 언젠가는 괜찮아 지겠지만 일단 과도기 같아.]
메시지를 보고 뭐랄까.. 걱정했던 부분이 왔구나 싶었다.
인터넷으로 이런 상황 일 때의 아이의 심리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는데 증상 중 하나가 퇴행이었다.
왜 그런 걸까.
다시 자기가 어렸을 때로, 엄마아빠가 함께였을 때로 돌아가려는 발버둥일까..
또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여기를 이제 우리집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적응은 하는 거 같아. 같이 지내서 싸우고 냉한거 보다는 나으니까 애한테도 더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집에 내 안경 있어?]
안경이라.. 드레스 룸 서랍에서 본 것 같다.
아내는 라식을 해서 안경을 쓰지 않는데, 일할 때 가끔 썼다.
지난 번에 아이와 본가에 있을 때 문을 따고 들어왔을 때, 못 챙긴 본인의 물건을 가지러 왔나 했는데 안경을 찾는 걸 보니 그건 아닌가 보다.
아내가 가져가지 않은 개인 물건들을 내가 따로 쇼핑백에 담아두었는데 그것도 가져가지 않았었다.
대체 왜 들어온 걸까.
[안경 있어.]
아내에게 답장을 보냈다.
[태권도 가방에 내복이랑 씻길 거, 내복 이랑 로션 챙겼으니 씻기고 데려다 줘. 요즘 아홉시에 재우고 있으니까 늦지 않게. 안경도 가방에 넣어주고. 태권도 5시 50분에 끝나니 늦지 않게 데리러 가.]
내 퇴근은 오후 다섯시다.
보통 집에 도착하면 다섯시 반이라서 급한 야근을 하지 않는 다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오늘 그 보통의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와 저녁을 먹기로 해서 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해야 할 업무는 아이를 처갓집에 데려다주고 밤에 집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팀 전체가 함께 해야 하는 업무인데 내가 해야 할 부분을 제외하고는 팀원들이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주면 내 담당 부분을 작성 후 전체 내용을 정리해서 기획팀에 넘기기로 했다.
개인 사정으로 요즘 계속 팀에 폐를 끼치는 것에 미안했지만 내 사정을 알고 있는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 기혼자이고 아이가 있어서 다행히 내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태권도장에 도착하니 유리문 너머로 아이가 보인다.
하원하고 셔틀버스를 타는 아이들은 바로 내려가지만 누가 데리러 오는 아이들은 다음 수업시간이 30분 뒤라서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놀다가 간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인사를 한 뒤에 친구들과 조금 더 놀다 가도 되냐고 물었고 그러라고 했다.
조금 뒤에 그 친구들의 어머니들이 오셨고 인사를 나눴다.
한 어머님이 오늘 아내는 뭐하냐고 물어서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올 걸요?”
라고 대답하니
“오늘 밤에 제가 좀 빌려도 돼요?”
라고 물었다.
아이와 같은 어린이 집을 다녔고 유치원에서도 같은 반인 아이의 어머니인데 가끔 아내랑 밤에 술을 마셨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하하, 연락해 보세요.” 라고 하고 대화를 끊었다.
이따금 이런 당황스럽지만 견뎌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 중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토요일 오전에 있는 문화센터 발레 수업이다.
아내의 외도 발생 전에는 당연히 같이 다녔는데,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내가 아이를 보는 주말에는 홀로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갔다.
문제는 처제의 아이도 같은 수업을 듣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만나게 되고 어색한 시간을 갖는다.
왜 이혼하는지를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내도 당연히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통의 이혼사유가 그렇듯 성격차이로 알고 있겠지.
곧 형부가 아니게 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할 만도 한데,
어린 처제는 그래도 나보다 용기를 더 냈기에 그래서 처제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곤 했다.
동서는 회사 방침상 가족 동반이 안되는 국가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어서 처제는 혼자 조카를 데리고 온다.
수업이 끝나면 열 두 시.
아이와 밥을 먹으러 푸드코트에 가면 처제와 조카가 있을 때도 있다.
어른들의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은 또 봐서 반가워하며 같이 밥을 먹자고 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있어서 대화가 어색하진 않다.
처제와 동서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진심으로 가족들이라 생각했다.
처제네가 잠깐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아내가 어렵게 돈을 빌려줘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1초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줄 수 있을 만큼 빌려주라고 했었다.
조카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우리 가족과 같이 놀러도 다니고 처갓집 별장도 몇 번 함께 가서 며칠을 보내다 오곤 했다.
아들과 동갑인 조카는 어렸을 때 내 콧수염이 강렬했는지 동화책을 읽다가 콧수염이 있는 캐릭터가 나오면 “어, 이모부다.” 라고 했다.
지금도 가끔 조카가 생각난다.
가족이었는데, 더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공기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태권도장에서 아이를 하원시키고 아이가 좋아하는 플레이룸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주문했다.
플레이 룸에 들어가서 같이 놀아주고 집에와서 아이를 씻기고 처갓집에 보내 주었다.
아까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업무를 처리하고 누웠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날엔 그래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상대측 서면이 왔습니다.]
며칠 뒤 변호사에게서 메시지와 함께 4차 서면을 받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왜 그날 집에 들어왔는지 알게 되었다.
"Everyone's worried about the kid's regression and curious about the wife's motives for coming to the house. Also, some playful comments about the author's mustache and awkward family dyna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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