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구한다더니 공포로 몰어넣는다
-데이비드 브로더 유럽 정치 전문가
https://www.nytimes.com/2025/12/03/opinion/europe-britain-france-germany-centrist.html

약 10년 전, 포퓰리즘 쓰나미가 유럽을 덮쳤다.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흔들리던 유권자들이 주류 정당을 외면하고 위험한 대안을 끌어안았다. 대륙의 정치가 요동쳤다. 지도자들에겐 악몽 같은 시절이었다.
그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극우가 집권할 가능성은 과장됐다"며 진정하라고 했다. 탄탄한 선거제도, 독재의 트라우마, 부유층의 낮은 지지율. 이 세 가지가 '철벽 방어선'이 될 거라는 논리였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자신감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극우 정당들은 표를 쓸어 담았다. 유럽 의회·집행위원회에 둥지를 틀었고, 녹색 전환의 핵심 고리를 끊어냈다. 국경은 점점 더 철저하게 닫혔다. 헝가리와 이탈리아는 이미 넘어갔고, 체코도 시간문제다. 사회민주주의의 성지였던 북유럽에서도 보수 정권은 극우의 손을 빌려 간신히 버틴다. 백악관과 X(트위터) 상층부에도 그들의 응원단이 버티고 있다.
더 무서운 건 아직 안 끝났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선 마크롱 정부가 수직 낙하 중이다.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이 여론조사 1위를 굳게 지킨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에선 정보당국이 극단주의로 규정한 AfD를 좀처럼 꺾지 못한다.
영국에선 키어 스타머 총리의 침몰하는 속도가 나이절 패라지의 '리폼 UK'가 치고 올라오는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극우 대약진의 레드카펫이 깔렸다. 꼭 이렇게 될 필요는 없다.
덴마크와 스페인이 증명했다. 주류 정부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 극우를 이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단순히 "포퓰리즘이 위험하다"고 외칠 게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프로젝트를 내놓으면 된다.
극우는 언제나 소외된 이들에게 먹힌다. 중도·진보가 희망을 잃고 투표장을 외면할 때 극우는 힘을 얻는다. 그러니 더 강하고, 더 푸르고, 더 안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대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지층이 다시 일어서고, 실망한 이들도 돌아온다.
다행히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파리·베를린·런던의 중도 지도자들은 "극우의 부상은 필연이 아니다", "막는 게 제1의 임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그들이 그 임무를 처참하게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는 극단 세력에 투표할 이유를 주지 않겠습니다."
2017년 5월, 마크롱이 루브르 앞에서 한 약속이다. 그는 르펜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의 불안을 내가 해결하겠다"고 장담했다. 프랑스를 역동적인 스타트업 국가로 바꾸는 경제 재도약이 핵심 전략이었다.
처음부터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정책이었다. '목성 대통령'을 자처하며 "지금 고통받더라도 내일 보상받을 것"이라고 했다. 부유층 감세, 연금 연령 상향에 불만이 터져도 결국 경제 성적으로 고마워할 거라 믿었다.
국민은 고마워하지 않았다.
2022년 총선에서 과반을 빼앗겼다. 의회를 우회해 연금 개혁을 강행했고, 2024년엔 조기 총선을 불렀다. 결과는 대참패. 지금 프랑스는 2년 새 총리 다섯 명을 갈아치웠다. 마크롱이 2027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르펜은 코앞에서 숨죽이며 기다린다.
마크롱이 약한 데서 세게 밀어붙였다면, 스타머는 강한 데서 너무 조심한다. 지난해 노동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행보는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이다.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야 내일 성장한다"는 구호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했다. 연금생활자·장애인 지원 삭감은 여론이 악화되자 슬그머니 철회했다.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억압적 모습까지 드러냈다. 팔레스타인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활동단체 '팔레스타인 액션' 을 테러 조직으로 낙인 찍었다. 할머니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이 퍼지면서 표현의 자유는 치명상을 입었다.
반면 패라지의 리폼 UK에는 제대로된 대응을 못한다. "이민이 국가 결속을 해친다"고 했다가 "(그 말을) 후회한다" 하며 오락가락이다. 노동당 지지율 18%, 리폼 UK 30%. 이유는 그게 전부다.
메르츠 총리는 셋 중 가장 직설적이다. 2월 총선 승리 후 차입 상한을 풀어 국방·산업 부흥에 쏟아붓겠다고 했다. 하지만 AfD는 그 정책마저 '독일 주도 군비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하고 있다. 메르츠는 자신의 간판을 빼앗겨도 할 말이 없다.
세 정부의 공통점은 하나다. 극우의 반이민 감정을 그대로 받아안았다는 거다.
마크롱은 "이민자가 문명을 파괴한다"는 국민연합 손을 빌려 이민자 복지를 깎았다.
스타머는 "대규모 이민이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줬다"며 망명 제도를 초강경으로 바꿨다.
메르츠는 '대규모 추방'을 공약하며 이주민을 여성의 위험으로 몰았다.
결과는 참패였다. 국민은 창백한 모방품(중도) 대신 진짜(극우)를 선택했다.
덴마크는 달랐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인민당은 27%에 육박했다. 2024년엔 6%로 추락했다. 유럽 전체가 극우 돌풍인데 덴마크만 거꾸로 갔다.
많은 이가 "메테 프레데릭센이 이민을 틀어막아서"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절반만 맞다. 그녀의 첫 내각은 반이민 강경책과 함께 재생에너지 대규모 투자, 세계 최고 수준 탄소 감축 목표, 법적 석유 시추 중단 시한을 동시에 밀어붙였다. '녹색 일자리가 덴마크 번영의 조건'이라는 메시지에 돈까지 댔다. 국민은 그 이야기에 표로 답했다. 지금 덴마크 국민 최대 걱정거리는 기후와 의료다. 이민은 뒤로 밀렸다.
스페인은 더 극적이다. 훨씬 가난하고 분열돼 있는데도 페드로 산체스는 6년째 버티며 30%대 지지율을 지킨다. 비결은 간단하다. 편을 들었다. 팬데믹 때 전기요금 상한, 배달라이더 노동자 권리 인정, 최저임금 대폭 인상, 초부유층 증세를 밀어붙였다. 비교적 관대한 이민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저소득층이 '주류 정당은 우리 편'이라고 느낄 이유를 계속 줬다.
2023년 총선에선 극우 복스 연합이 이길 것이 확실시됐다. 산체스는 투표율을 끌어올려 뒤집었다. 성과와 미래 이야기를 들려줬고, 국민이 표로 화답했다.
두 총리 모두 지금 흔들린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대담함만이 극우를 이긴다.
프랑스·영국·독일도 할 수 있다. 부유세, 에너지 요금 통제, 녹색 투자 부활, 인프라 재건. 의회에서 머릿수 싸움은 앞서 있고, 다음 선거까지 시간도 있다. 국민은 아직 극우에 넘어가지 않았다. 단지 (중도를 지지할) 희망의 이유를 기다릴 뿐이다.
그 이유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이들은 "극우가 집권해도 곧 힘이 빠질 것"이라며 자위한다. 네덜란드에서 빌더르스가 밀려난 걸 예로 든다. 그러나 그의 표는 다른 극우 정당으로 옮겨갔을 뿐, 전체 극우 득표율은 꿈쩍도 않았다.
2030년쯤이면 우리는 '포퓰리즘과 가벼운 연애'가 아니라 '극우가 유럽을 장악했다'는 말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때 그들이 물려받을 국가는 군비 증강법, 청년 징병제, 시위 진압법으로 무장한 괴물이 돼 있을 것이다. 그린딜은 사라지고, 예산은 군대와 추방 기구와 국경 장벽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의료 민영화와 AI 감시로 가난한 이들을 길들이고, 우크라이나 난민과 무슬림을 '재이주'라는 이름으로 쫓아낼 것이다.
아직 정오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중도 정부들이 지금처럼 계속 헤매면, 극우는 유럽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 다음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데이비드 브로더는 최근 '무솔리니의 손자들: 현대 이탈리아의 파시즘(Mussolini’s Grandchildren: Fascism in Contemporary Italy.)'을 출간했다. 이 칼럼은 베를린에서 작성했다.
◇NYT 독자 반응
-이 칼럼은 이민의 영향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다. 나는 독일 30년 차 거주민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민에 관한 '정설'이 있었다. 유권자는 이민을 열정적으로 환영해야 했고, 중동 출신 집단의 동화 의지를 의심하거나 (끔찍하게도) 범죄 통계에서 그들이 과다 대표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바로 '취소'당하고 인종차별주의자, 나치라 불렸다. 유권자들은 수년간 이 광경을 똑똑히 봐왔다. 이민에 대한 우려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15년 이후 대규모 이민이 '고급 인재 충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난 뒤에도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상황은 계속됐다. 지금도 '이민 제한'이라는 말만 할 뿐, 난민 수용소는 계속 짓고 있다.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AfD는 아마추어 집단이고, 이민만 외치는 단일 이슈 정당이다. 그들의 당 강령을 보면 모든 걸 이민 프레임으로 본다. 일상적인 민생 문제는 손도 못 댄다. 하지만 언론과 기성 정당이 수십 년간 국민을 속여왔고, 이민 정책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탓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AfD 같은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재앙이다. (독일)
-이 글엔 이민에 대한 희망사항이 너무 많다. 몇 년 해외 생활 후 이웃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는데, 여론이 얼마나 급변했는지 충격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민을 열렬히 환영하던 친구들이 이제 극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부모들이 사립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학생 대다수가 독일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눈엔 별일 아닐 수 있지만, 오스트리아에선 공교육 시스템이 대규모로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다. (버지니아)
-전형적인 한쪽으로 치우친 좌파 오피니언이다. 유럽 다수 국가가 천문학적 재정적자, 감당 못 할 복지, 일하고 투자할 의욕을 꺾는 세금, 생산성 하락,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감당할 의지와 자원 모두 부족하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극우는 답이 없지만, 중도좌파 정치인들 또한 이 판을 만들어놓고도 책임지지 않는다. (뉴욕)
-이 칼럼은 글에서 지적하는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극우 유권자를 '희망 없는 소외층'으로만 보는 건 틀렸다. 희망이 없으면 투표 자체를 안 한다. 그들은 중도와 이 칼럼니스트가 귀를 막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녹색 경제'가 공장 문 닫고 규제만 늘리는 탈산업화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태양광 패널을 중국이 만드는 이유가 단순히 인건비 때문만이 아니다. 전기요금 폭등, 독일 원전 폐쇄, 프랑스 농업 몰락, 수도권 밖 사람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유류세.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이민)다. 인구 변화 비용을 치르는 건 엘리트가 아니라 서민이다. 병원 포화, 공교육 붕괴, 폭증하는 국가부채 말이다. 유럽이 만든 복지국가는 신뢰와 사회적 결속이 있어야 돌아간다. 현실을 외면하는 쪽이야말로 진짜 소외층이다. (프랑스)
-"유럽 주요국에서 중도 정부가 처참히 실패하고 있다"는 필자 말에 웃음이 나온다. 오늘날 중도라는 게 어제의 극좌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좌파는 늘 "우리가 대중보다 낫다"는 오만으로 점철돼 있다. 서유럽 국민들이 문화 강제 혼합과 동화 불가능한 대규모 이민을 밀어붙이는 이념적 오만에 반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지금 유럽 우파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온건·중도로 불리던 정책과 같다. 이게 이성으로의 회귀 신호일 수 있다. 미국도 똑같다. 오만한 진보 좌파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이 쓰러졌다. 그런데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이스라엘)
-좌파식 무제한·무책임 이민 정책이 결국 더 큰 해악을 낳았다. 합법 이민 경로마저 위험에 빠뜨렸다. 불법 이민 급증으로 합법 이민마저 지지를 잃었다. 좌파와 민주당 지도부는 합법·불법을 구분하지 못해 모든 이민자를 부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그게 극우 포퓰리즘에 기름을 부었다. (미네소타)
-스페인 사회노동당을 '중도좌파'라고 부르는 순간 남은 신뢰를 다 잃었다. 덴마크의 성공적인 이민·난민 정책은 언급 안 하고, '녹색 일자리' 가 경제를 살릴 거라는 막연한 주장만 한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나 깔아주는 최저임금 일자리가 기계공·용접공 일자리와 같나? 덴마크 농민들이 탄소세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한 것도 기억 안 나는 모양이다. (오리건)
-경제 때문이다. 유럽이 이 지경이 된 건 이전 정부들이 경제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1) 녹색 정책으로 싼 에너지 필요성을 무시 2) 반러시아 정책으로 값싼 원자재 무시 3) 느슨한 이민 정책으로 복지국가 재정 부담 무시. 극우 부상을 막는 쉬운 길은 경제를 살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건 유럽이 '우리가 더는 세계를 호령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지금 정치인들은 그게 제일 어렵다. (뉴욕)
"Europe's center-left is getting roasted by readers over immigration, economic policy, and general vibes. Some say it's all the left's fault, others think the article missed the mark. Basically, everyone's mad, and the far-right is ch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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